역대 마이너리거만 생각한다면 한국인 선수들이 가장 많았던 팀. 염소의 저주를 깨고 108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한 팀. 중부지구의 빅클럽팀. 시카고 컵스입니다.
무려 108년간 우승을 못했기 때문에 그만큼 놀림감이 되었던 팀이자, 조롱의 대상이었습니다. 컵스에 대한 농담들은 워낙 많아 다 소개를 하려면 하루 종일 글을 써도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한국인 기준으로 이전 컵스의 마지막 우승연도엔 한국에서 순종이 재위 중이었습니다. 조선시대였던 것이죠. 메이저리그 역사를 봐도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는 데드볼 시대에서 라이브볼 시대가 왔습니다. 거의 전 세계의 모든 20세기 근현대사가 컵스의 마지막 우승과 최근 월드시리즈 우승사이에 벌어졌습니다.
지역라이벌 시카고 화이트 삭스와 인접한 지역에 있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도 라이벌 관계입니다.
원래 야구에서 우승을 오랫동안 못하는 팀들은 팬들의 충성도가 높죠. 컵스팬들의 충성도도 어마어마한데요, 100년 넘게 월드시리즈 우승을 못했을 당시에도 처절한 성적을 보여 줬지만 관중동원에서는 늘 5위권안에 드는 상위권일 정도로 늘 최고 인기팀이었습니다. 지역사회에서의 인기도 있지만 이렇게 많은 팬들을 모을 수 있던 이유 중 큰 점 하나는 몇 안 되는 전국 중계를 타는 팀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 내 스포츠 중계의 특수성을 조금 이해해야 합니다. 스포츠 전국중계는 대규모 행사가 아닌 이상 보기가 정말 힘든데요 시카고의 언론사 wgn방송사가 시카고 컵스 경기를 전국 방송으로 송출하기에 신규 팬들의 유입으로 선순환이 되면서 팬이 급격히 늘어나게 된 것도 한 원인으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기가 시들해졌다가 (농구와 NHL 시카고 연고 팀들의 인기도 영향이 있음) 2015 시즌 컵스의 성적이 반등되기 시작하면서 팬들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우승당시 100세가 넘는 어르신들의 우승소식을 듣고 우는 장면은 저도 기억이 납니다. 정말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시간이 나면 한번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좀 감동적인 사연들이 정말 많았어요.
아이러니하게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시즌 중 홈구장 리글리 필드에서 시리즈 승리를 확정 지은 적이 적습니다. 월드시리즈에서도 우승을 확정 지은 구장은 클리브랜드였습니다.
시카고 하면 어쩔수 없이 염소의 저주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만큼 오래된 스포츠계의 저주 중 하나였기 때문이죠. 지금은 유명한 저주가 다 깨져버린 상태입니다. 두 저주와 관련된 인물이 테오 엡스타인이라는 점도 눈여겨볼만합니다.
때는 1945년 7년만의 월드시리즈 진출을 한 시카고 컵스의 홈구장 리글리 필드에 빌리 시아니스라는 관중이 염소를 한 마리 데리고 옵니다. 시카고 스타디움 앞에 그리스식 음식점의 주인이었습니다. 저주 덕분에 초대박을 쳤다고도 합니다. 지금처럼 관중 통제가 엄격하지 않은 시절이었지만 입장권을 끊을 당시에도 저지를 당하지 않았지만 구단주님이 악취와 보기에 좋지 않았다는 이유로 염소를 내보낼 것을 지시했습니다. 별안간 퇴출 통보를 받은 시아니스는 계속 우기다가 쫓겨나는데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저주를 퍼붓습니다. 단순한 해프닝 같은 이 사건이 70여 년이 넘게 회자되리라고는 당시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겠죠? 재미난 사실은 이후 1973년 조카인 샘 시아니스가 빌리 염소의 7대손과 함께 저주를 풀겠다면 리글리 필드에 입장하려 했지만 그때도 저지되고 말았습니다. 1984년 드디어 출입을 허용하긴 했지만 저주는 계속되었습니다.
가장 기억이 남는 시리즈는 2003년 입니다. 당시 저도 라이브로 보고 있었습니다. 케리우드와 마크 프라이어, 마크 그레이스, 로드 백, 세미 소사, 모이세스 알루등 투타가 조화로운 팀으로 2003년 애틀랜타를 꺾고 리그 챔피언쉽에 진출, 말린스와 대결하게 됩니다. 3승 2패로 앞서던 6차전, 2이닝만 버티면 월드시리즈 진출이라는 쾌거를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8회 파울타구를 스티브 바트먼이라는 청년이 손을 뻗었고 공을 잡으려고 했던 모이세스 알루는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당시 괴물급 성적을 오렸던 마크 프라이어는 이 파울 타구 이후 멘탈이 나간 나머지 완전히 다른 모드로 변신해 먼지 나게 얻어맞기 시작했고 결국, 3대 0이던 스코어는 8대 3으로 역전되면 시리즈 동점을 허용합니다. 사실 자세히 보면 바트먼이 잡지 않았어도 타구를 무조건 잡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알루가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의외로 바트먼은 방송이나 어떤곳에도 출연하지 않고 조용히 지냈습니다. 비록 전화번호는 바꿔야 했지만요. 여전히 컵스 팬이지만 리글리 필드 근처에는 아직도 얼씬도 못한다고 합니다. 당시 바트먼이 앉아있던 의자는 바트먼 의자라고 불리며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성지가 되었습니다.
2016년 월드시리즈 후 컵스는 바트먼에게 우승반지를 수여했다고 합니다. 이런 거 보면 미국의 문화, 부러워요.
2011년 레드삭스의 저주를 푼 테오 앱스타인을 데리고 오면서 팀의 체질을 개선했고 계약 마지막해 5년만에 컵스는 우승을 차지합니다. 당시 우승멤버였던 에디슨 러셀은 한국에서도 뛰었습니다. 레스터, 크리스 브라이언트, 조브리스트, 아리에타, 리조 등의 활약이 좋았습니다.
다음은 시카고의 홈구장 리글리 필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14년 41,649석으로 개장한 이 구장은 외야에 있는 담쟁이 덩굴로 유명한 구장입니다. 보스턴의 홈구장 팬웨이 파크 다음으로 오래된 구장입니다. 아직도 수동식 스코어보드가 사용되는 예스러운 멋이 있는 구장입니다. 팀의 인기에 비해 홈구장이 작은 편이라, 시즌 중에는 항상 자리가 부족하고, 이러한 이유로 표 가격이 엄청 비싼 편입니다. 역사성과 스포츠 문화 공헌으로 미국에서 국립 사적지로 등록이 되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팬웨이 파크는 유지 보수를 하면서 좋아진 반면 리글리 필드는 메이저 리그 최악의 시설을 가진 구장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현재는 리모델링을 거쳐 약간은 나아졌다고 합니다. 특이한 점은 외야 쪽 구장과 맡닿아 있는 건물의 옥상에 비공식 관중석을 설치해 입장료를 내고 야구를 볼 수 있는데요, 이 때문에 컵스가 부당이익으로 건물주들을 고소했지만, 기나긴 법정투쟁 끝에 수입의 일부를 컵스 구단에 납부하는 조건으로 영업을 허가해 줬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컵스 구장의 외야에는 광고판이 거의 없습니다.
이번 편에는 컵스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저주에 관련된 내용만 포스팅해도 쓸 내용이 많은 구단이지만 충성도 넘치는 열정적인 팬들과 오래된 구장이 나름(?) 조화로운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구단인 것 같습니다.